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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정리를 할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내 책상에는 늘 수백장의 시디와 수십권의 책이 쌓여있었고, 그 책과 시디는 한데 뒤 섞여 있었다. 하드디스크는 이것이 정형물인지 썩어가는 생물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고, 깔끔하지도 못해 집구석에 틀어박혀지낸 1주일이면 오대수가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게 변하기도 했다.
군에서 일종의 관리직으로 있던 나는 전역이후에 달라진 내가 즐거웠다. 전역하자마자 보름만에 보유한 물품의 반을 정리하면서 버리고 남은것을 진열장에 진열해버렸다. 내가 가지고있던 모든 물품을 닦고, 분류하고, 버리고, 보관했다. 하드도 깔끔해졌다. 중학교때부터 쌓여온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그동안 지워지지 않고있던 모든 자료는 한곳에 모아지고, 재분류되서 정리되었다. 그렇게 정돈된상태를 얼마간 유지해왔을까? 내 방을 들어선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이질감. 매주 이어진 청소에 손때마저도남아있지 않은 비정상적 공간. 사람이 살고있음에도 구석구석 베어있는 차가운느낌. 잠을 자기위해 누워있으면 책장들은 나를 향해 무너지는것 같았고, 하드디스크는 오랜기간 고여있던 물처럼 악취가 느껴지기시작했다. 정리를 할줄 알게됨과 동시에 사라진게 있다. 집중력과 열정. 어떤일을해도 깊게 몰두하지 않는다. 어떤일을 해도 욕심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것은 나를 갉아먹어가면서라도 해내고자했던 과거의 내가 사라졌다. 모든것은 깔끔하게, 모든것은 규칙적으로. 수업을 듣다가 구역질이 났다. 모든 정보의 DB화, 모든 인간관계의 조직화, 모든 조직의 구조화, 모든 작업의 체계화. 규격화,정규화, 시스템화, 조직화. 딱딱하다. 너무도 딱딱하다. 인간의 냄새가 나질 않는다. 인간의 냄새에 가려져있어야할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다시금. 나를 본다. 다시금. 구역질. 봐줄 수가 없다. 인간이 가진 두개의 중추중 하나를 버린듯한 모습. 마치 모든 정보를 다루지만 행동할줄 모르는 컴퓨터 같다. 지금의 나에게 인간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줄수가 없다. 살아간다는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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