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남자. 반허공에 관하여..
경계란 항상 모호한 것이다. 경계란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으로 이루어진 그런존재가 아니다. 경계란 어떠한 두가지 대립항이 부딛히게 되어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일종의 공간으로, 그 공간은 단순차원의 형태로 존재하지 못하게된다. 두가지 항의 부딛힘은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그 에너지는 부딛히는 순간을 중심으로하여 확산되어 일정한 공간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며, 그 영향력을 미치는 공간이 바로 경계화 되는 것이다. 마치 좌,우가 어떤 한정적 공간에대한 지칭이 아닌 양 극을향하는 무한대의 공간인것과 같이 경계또한 무정형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무정형의 공간이란 그 형태가 굳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모든것들이 충돌하며 존재하지만, 반대로 모든것이 충돌하기때문에 어떤존재도 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경계에대한 영화이다. 귀족과 광대, 예술과 권력, 남성과 여성, 이전과 이후. 그 모든것들이 이 영화 내에서 혼돈속에 존재하며, 서로간에 상호적 위치를 정립하지 못한체로 굴러다닌다. 역사속에서도 연산군의 시간은 정권 교체사이에 낀 혼돈의 시기이다. 그 혼돈의 공간안에서의 화두는 '변화'로 일어나고, 그 변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칭 할 수도 있는 혼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 속에서 먼저 여성은 권력을 잡고 휘두르기 시작한다. 녹수의 등장은 모든 변화의 시작이된다. 녹수의 권력상승을 바라본 광대들은 이 혼란속에 몸을 맞긴체 자신들이 있는 손이나 발의 위치가 아닌 머리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라라는 몸의 머리속에 들어간 광대들은 그 머리속을 꽹과리소리 울리듯 정신없이 휘저어놓기 시작하고, 그 효과는 그대로 연산에게로 이어진다. 어린시절의 아픔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는 연산은 배반적존재이다. 비록 외형적 사회적으로 그는 어른이고 또한 나라의 중심에 서있지만, 그의 내면은 어린시절의 고통에 휩쌓인체로 멈춰있고, 이러한 경계적 불안감은 광대들의 놀음에의해 쉽사리 흔들리는 것이다.

장생과 공길은 도망쳐나온 직후 서로의 존재를 장님연기를 통해 인식한다. 그들은 장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눈을 감은 순간을 어떻게 생각이 될 수 있겠는가. 장생은 공길에게 줄타기에대해 이야기한다. 줄위는 반허공이라고, 허공이지만 허공이아닌공간, 중립적공간 즉 땅과 하늘의 경계에 있는 공간으로서의 줄위는 그들의 예술적감각을 최대로 발휘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멀쩡한 사람이 눈을 감는다는것은 그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은 장님이 아니지만 장님이다. 눈을 뜨고있을때 보고 느끼지 못하는것을 그들은 눈을 감고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존재에의 확인은 모든것이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경계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파국이된다. 공길의 몸파는 모습이 싫어 공길을 끌고 뛰쳐나온 장생은 그가 왕궁으로 끌고오는바람에 왕의 남자가 되어버린 공길을 발견한다. 공길은 자신의 비참함이 싫어 도망쳤지만 결국 어느곳에서나 같은 모습이 되어버리는 자신에대해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는 사이 둘은 또다른 혼란의 한부분, 녹수의 계략에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장생은 그렇게 혼란속에 눈을 잃고 만다.

눈을 잃은 장생이야말로 이 영화가 얻고자한 미학의 극이다. 원작연극 '이'에서의 장생의 반란가담마저도 포기하면서 얻어내는 최고의 예술인것이다. 시간을 도입하여 생각했을때 경계라함은 어떤 두시간의 사이에존재하는 하나의 시간이다. 즉, 시작과 끝의 사이에있는 과정인것이다. (이과정은 두 시간을 미래와 과거로 생각하면 바로 현제가 된다.) 이전까지 그의 예술은 바로 그 과정이었다. 자신을 표현하며 그 극을 향해, 최고의 표현을 향해가는 과정말이다. 예술이란 태생자체가 '어떤한 초월적 존재에의 향수'에서 시작된다. '눈을감는'행위나 '줄을타는'행위는 모두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점을 향하는 행위인것이다. 눈을감고 자기자신을 잊고 자신안의 암흑을 보는 행위는,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히 하는 행위이고, 반허공의 위치인 줄위에서 줄을 타는 행위는 반허공을 도약점으로 삼아 땅의 반대편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초월적 욕망의 발산이다.

영화의 마지막에가서 공길이 버린 왕은 다시 녹수에게로 향하고, 궁을 빠져나가려던 장생을 공길에게 붙잡힌다. 급기야 최후까지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연산을 조종해서 바른길로 이끌어나가려던 충신마저 자살의 길을 택한다. 자살과 함께 다음 역사로 넘어가려는 반역의 불길은 올라오고, 눈을 잃은 장생의 마지막 광대짓을향한. 아니 이 시대의 완성을향한 마지막 무대가 완성된다. 모든형상은 사라지고, 모든 충돌점은 한자리에모여앉아, 장생과 공길의 광대질을 감상하는것이다. 이 광대질은 이미 눈이 멀어버림으로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게된 장생의 판이다. 장생의 눈먼외침에서 자신을 바라보게된 공길은 그를향해 달려간다. 이제 둘은 영화의 시작이후 한번도 오르지 못한 반허공의 세상에 도달한다. 먼길을 돌아 돌아, 그들만의 세상에서 다시금 만난것이다. 그곳엔 화를내는것도 잊고 또다시 광적인 웃음을 띄는 연산과 신하들의 보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녹수와 다가오고있는 반란군이 존재한다.

마침내 반란군은 궁을 향해 뛰어들고, 그 모든 혼란스러운 존재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장생과 공길은 모든것을 초월하며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그들은 더이상 땅이란 구속에서 존재하지 않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영화의 시간은 그 완성의 순간에 멈춰버린다. 세상을 초월한 그들에겐 더이상의 고통은 없다. 눈을 감고있으면 아무도 없지만, 역으로 모두가 있는것이된다. 그것은 바로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기때문이다. 이젠 그들은 경계=반허공=과정=현제로 대변되는 세상에 살아갈 필요가 없다. 세상의 혼돈은 그곳을 벗어나버린 그들에겐 웃긴 광대질에 지나지않기때문이다. Fin.
by 도모에 | 2006/01/17 00:34 | 영화와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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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니케 at 2006/01/20 17:0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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