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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영화다. 무척이나 어려운 영화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자의식과잉으로 가득차서 어쩔줄을 모르는 그런 영화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하다는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자의식으로 가득찬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의 내면에 갖히고, 그러다보면 외부와의 의사소통따위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저런 영화평을 아무리 써놔봤자. 이해할 수 있는사람이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제목은 '관객들을 위하여'다.
이명세다운 영화이다. 영화 전체가 스타일리쉬로 가득차있다. 내가 뭘 많이 알겠냐만은 감히 이렇게 말해본다. '당신이 이영화를 보았다면 당신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조명촬영과 편집기법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것이다' 그정도로 이 영화는 기교로 가득차있다. 어쩌면 그 기교는 이명세의 영화 역사에서 드러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이명세의 기교라는 것이 일반적인 작가주의들이 생각하는 그런 무겁고 심각한것과는 차이가난다. 그가 보낸 과거. 형사코믹영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설. 그시절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것인지. 영화의 초반과 전반부에 그러한 코믹적 기운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 코믹적 기운이 편집적 기교로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기술적 측면이 그러한 코믹적 기운으로만 나타나는것은 아니다. 어쩌면 관객들에게 가장 힘겹게 다가갈 수 있는 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 빛과 화면적 아름다움에대한 지나칠정도의 절제성과 집착에가까운 행태는 극도의 아름다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자신의 안에 갇혀버리는 모양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볼때 주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색채와 컷이넘어가는 순간의 편집기법에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양쪽으로 이어져나간다. 외적으로 정치적인 시나리오와 두주인공간의 사랑이야기. 먼저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 외적인 시나리오는 상당히 컬러풀하게 이어져나간다. 이는 일반적으로 작가주의 감독들이 허상의 세계와 실체의 세계를 구분할때 선호하는 방식이다. 무척이나 화사하고 생동감이 넘치지만 그들은 그곳에 살고있지 않다. 그곳의 화사함과 생동감은 대부분 그 배우들의 연극적인(과장된)연기와 익숙하지 못한 컷 나눔에의해(한 컷이 넘어갈때 서서히사라지는 방식(디졸브)같이 우리의 눈에 익숙하고 자극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지나가는컷이 많이 없다)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감정이입이 어렵도록 유도해나간다. 반면 두주인공의 사랑이야기는 단색으로 채색되어진다. 명도보다 채도가 두드러지는 세상으로 그곳의 이야기는 단순하지 못하고 모든것이 정확한 경계가 없이 이어진다. 두 주인공의 듀얼(Duel)씬에서보이듯이 빛속에서 그들은 사랑을하고 어둠속으로 숨어버렸을때 느껴지는것은 소리와, 혹은 칼부림하는 칼의 번뜩임이다. 싸우는것은 칼이지 두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편집또한 상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두 사람의 감정이야기에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된다.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으로 외적이야기와 뚜렷한 구분을 두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부분의 조절부분에서의 아쉬운부분이 생겨난다. 두이야기의 비중을 생각해봤을때 그 길이의 조절에 따른 아쉬움이다. 정치이야기는 심각한듯하면서도 코믹하고 과장되게 또한 빠른템포로 이어지고 또 그 비중을 생각했을때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부분은 더 적게된다. 또한 사랑이야기는 자연스러움과 감성적풍부함, 그리고 그 의미의 모호성에의해 다소 느린호흡을 보여주며 더 많은 러닝타임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런 느린호흡때문에 영화가 지루해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코믹하고 과장된 허구의 공간은 이러한 느린호흡을 보완해주어야하는데, 그 이야기의 비중성때문에 충분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결과를 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부분의 조절은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맞겨진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병판의 체포씬에서 이 모든것이 충돌하게 된다. 대립하는 두 세력이 충돌하고, 두 연인의 사랑은 같은 장소에서 공존하게된다. 합쳐진 세상은 아름답게 표현되어지고, 그 세상은 마치 장예모감독의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시각효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모든것이 충돌하며 공존하게된 완성의 세상에서 두 연인은 서로 허우적거리기만 한다. 그렇다. 그게 진실인 것이다. 화사한 공간속에선 마치 거짓인양 서로 대치만 했었고, 또 그들만의 공간속에선 서로의 사랑을 진실로 확인하는 연속이었지만, 그것이 합쳐진 진실은 서로 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서로간에 안타까움만 부여잡고 스러질 수 밖에 없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마지막 검무씬은 뒤에 이어지는 허구씬과 함께 이명세스타일의 최극단에 위치한다. 두연인이 극도로 늦어진 시간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바로 결투(Duel)을 행하게되고, 그 결투는 비록결투이지만 그 아름다움으로인해 마치 춤을추는것과 같은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그러니까 편하게 말할때는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씬이라고 해버린다). 그리고 그 반대편극단에는 마치 실제같은 생동감으로 포장된 세상속에서 죽어버린 슬픈눈과 대치하고 있는 남순이 존재하게된다. 사실 이 글로 말하고 싶던것은 이 글을 본 사람들이 두세계를 가른상태로 영화를 바라보는 법을 알게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 이외에도, 그 두사람의 안타까움의 표현이라던가, 정치계의 희화화, 안포교와 병필이하는 역할등 좋은점이 많지만, 이정도 영화문법에대한 이해는 영화'형사'를 보는 관객들에게 요구를 해보고 싶은것이다. 어찌보면 이 글은 비록 정말로 자신밖에 모르는 영화로 태어나서, 기대치 이하의 성적밖에 내진 못했지만. 매도당하는모습을 보기 싫은 모군의 변명일 것이다. 비록 영화가 태생적으로 상업성에 묶일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노력은 여타 예술들에 비견해서 결토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타 예술들은 '고급예술'이라는 시장이 존재하며 그예술만의 문법으로 인정을 받는데 비해 영화는 그러지 못하고있다. 그것은 '대규모 상업자본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유만으로 한호흡 길게 쉬고 넘어가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쩔수 없음에도 쳐보고싶은 몸부림일뿐이지만 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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