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태풍. 2005
영화보고 싶어서 오늘 하루 나와있습니다.
어차피 2주만 버티면 휴가나가기는 하지만, 영화 두편이 너무 아쉬운 마음에 잠깐 돈 쓰러 나왔지요
지금은 태풍 보고 잠시 쉬는 시간 pc방에서 잠시 인터넷질입니다.
2시부터 킹콩 보러가야하니 아주 잠시지요.


태풍의 계보는 분명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대형 블록버스터이다. 의심할 필요도 없다.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여도 왕의남자로 대표되는 형식과 청연과는 또 다른, 헐리우드식 대형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두개의 대형 작품에 의한 한국 대형작품의 성공선례를 아주 강하게 느꼈다. 비단 한국작품에만 한정지어지는 일은 아니다. 매년 이시기.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초, 설날이 겹치는 시기는 늘상 우리에게 거대한 작품은 선사했고 그러한 상업적 노력에 의해 우리는 이시절만 되면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이름을 내걸고 나오는 영화들에게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된양 돈을 흘리고 다니게 된다. 그런데 이런 국내에만 한정되는 일이 아닌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면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꺼내든 것은 다름이 아니다. 태풍이라는 영화는 분명 두 영화가 아니었으면 탄생하기 힘든 영화 였으며(영화적으로만이 아닌 사회적 시선과 여타 시점에서 그렇다.) 그 자신이 두 영화의 내적측면을 충분히 계승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미도가 되려고 한다. 실미도가 나왔을시점. 평단의 반응과 관객들의 반응은 꽤나 상이했다. 많은 수의 영화인들은 실미도에게 큰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냥 항상 그랬듯이 나온 한편의 강한 강우석의 한국적 이야기라는 정도의 평가였다. 하지만 실미도는 그런 평단의 이야기보단 관객의 반응에 의하여 우리나라에서 신화적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의 성공을 한다. 그 성공의 힘을 이후에 평가해보자면 시기적 적절성과 주제의 폭로성, 한국의 역사적 배경, 또 강우석의 기획자체의 힘이다. 강우석의 영화는 연출이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이야기가 특출나지도, 화면이 절묘하지도않다. 그의 영화는 이야기 자체를 가지고 우직하게 끌고나가며 그 우직함으로 사람의 시선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하는 그런 힘이 있다. 그리고 그런힘은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 능력에 있다. 태풍은 바로 그런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영화는 해양액션이지만, 그 내용의 기반엔 무수한 정치적, 군사적 배경이 깔려있고, 그로인한 치밀한 작전들이 내재하게 된다. 많은 장르영화들은 이런 경우 작전의 치밀성이나, 그 정치적 답답함, 또는 군사적인 우직함을 쌓아 올려 그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럴경우 영화는 한쪽방향으로 치우치게되며 관객을 한정짖게된다. 바로 이점이 실미도가 선택한 장점이었고, 태풍을 이를 따라간다. 조금더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점에 호소해서 이런것들을 적당히 비벼버리고, 좀더 관객폭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태풍'속에서는 아주 극적으로 치닫는 작전도, 정치성도, 군사적 우직함도 찾아볼 수 가 없다. (이점에서 태풍을 통해 한 남자다움을 발산하고 싶었다고 하는 이정재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남자다움은 2%덜 발산되었다)

이글을 보는 사람이 나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해본사람이라면 분명 한국군이 빙 둘러서 한국군과 북한군포로가 여흥삼아 싸우는(북한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 이야기를 들어보았을것이다. 태극기휘날리며에서 형제가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함께살던 친구들은 북한군으로 나타나며, 촬영의 방향은 좌,우.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 이유는 방금 언급한 씬에 내포되어있다고 생각하기에 태극기휘날리며를 이야기하면 항상 그부분을 언급하게 된다. 한 구역의 싸움터속에서 남과북은 싸움을 하고있지만, 그것은 남과 북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의지. 그 상황을 조장하는 자에의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그 외부의 의지는 언제든 내부의 상황에 개입해 모든것을 휘저어놓을 수 있다. 영화 태풍에선 또다시 이것을 이용한다. 남(강세종)과 북(최명신)이 어떤짓을 해도 미국방성의 전화 한통화면 정세는 뒤집어지고, 두사람이 격렬히 싸우고있는 속에서 운명이 결정되지못하고 미국이 날린 어뢰에의해 결투는 절박함으로 치닫는다. '가장 x같은게 뭔지 아쇼-? 그건 우리가 말이 통한다는거요' 라고 시작된 격투는 재미있게도 미군에의해 절정으로 만들어지는것이다.

하지만 태풍은 이것에서 약간더 진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군에 의해 극적상황이 설정되어 절정으로 치닫고 그 결투는 끝이 나지만,  결정적인 선택의기로에서 명신이 선택한 결말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형상을 만들어 준다. 태극기...가 보여준 것은 최후에서 형제가 싸우게되고 그 안에서 비록 정신을 차리고 동생을 살리기위해 형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지만 그것은 결국 과거의 상처로 남게되고 미래에 다시 그것을 바라볼때 눈물짓게 되는 ,즉 극복하지 못한 형태의 상처였지만. 태풍의 상처는 최명신의 선택에 의해 세종의 상처는 치유(극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은 하나의 신화를 위해 노력한다. '태풍'이라는 영화를 통해 또하나의 새로운 신화를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를위해 여러가지 성공적 신화에서 차용을한다. 기반은 헐리웃 스타일로 안정적으로 가져가며, 씬은 스타워즈, 매트릭스, 캐리비안, 실미도, 태극기 등등 수많은 영화들에서 차용해내고 있다. 또한 그것은 보는 순간 관객으로 하여금 감탄사와 눈물을 이끌어내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얼기설기 연결된 영화의 다양한 측면은 관객에게 그것들을 차분하게 쌓아올리게 놔두질 않고 마치 너무 커서 생선이 빠져나가는 그물같이 되어 버린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뭐다뭐다 내 자신이 참 말도 많이 해놨지만, 결정적으로 선 작품들과의 차이점이 있다. 어찌보면 실패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다. 시나리오, 촬영, 배우, 홍보효과 등등 많은부분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 작품에는 실미도가 보여준 기획력 안에서 느껴지는 힘도, 태극기가 보여준 역사적힘과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컨텐츠적 에너지' 또, 하나의 컨텐츠의 극단화도 그 어떤것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저것 뛰어난 요인으로 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얽어내는 능력 혹은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서 확실한 선택을 못한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예술적 소재의 보고이다. 그것은 격렬한 근대화를 겪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멀지않은 시기에 겪었던 그래서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에의 발로이다. 그렇기때문에 연말연시를 노린 대작 러쉬의 많은 작품들은 그시기의 소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그 소재가 지극히도 한국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직 한국은 헐리웃 영화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잘 만들어진 자국영화의 힘이란 마치 스타워즈가 그러했듯이 역사의 역할인, 한 민족(국가)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신화를 노리고 등장하는 작품들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잘됐으면하는 마음. 그런마음에 충족되지 못하는 작품이 나올경우 답답함이 드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Fin-

에잉. 오랜만의 글이라 뒤에선 정신이 없었네용(아아 사실 쓰다말고 킹콩보고와서 흐트러져버렸음둥 ㅠ.ㅠ)
무려 18개월만에 써보는 리뷰인듯 싶은데. 아쉬움이 많네용. 모군은 참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인데 시간적제약이;;
뭐 그래도 오랜만에 써서 기분좋게 FinFinFin
by 도모에 | 2005/12/24 13:35 | 영화와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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